‘전쟁과 평화’는 온 인류가 항상 고뇌해 온 불변의 화두(話頭)다. 평화로운 삶이야 온 인류의 소망이지만 자유와 기본인권이 보장되는 ‘참된 평화’를 지켜나가는 것이 그 만큼 쉽지 않다는 반증일 것이다. 호전적인 집단의 침략에 굴복하여 ‘노예적 평화’를 감수 하려하지 않는 한 나 혼자 아무리 평화롭고자해도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는 고대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길핀(Robert Gilpin)류의 패권안정론(覇權安定論) 같은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이라크 사태를 두고 부시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은 오늘날 지구촌 시대의 국제사회에서는 미국과 같은 패권(覇權)국가가 나타나서 나름의 세계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호전적 집단들의 발호(跋扈)를 막고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유효하고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오래 동안 논의되고 있는 가장 일반적인 것은 대체로 ｢균형｣과 ｢억제｣를 중심으로 한 개념들이다.




균형개념의 기본 논리는 서로의 힘이 ‘안정된 균형’을 이루게 해서 평화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도 북한의 핵 개발은 허용 할 수가 없는 문제다.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될 것임은 물론 한국은 저들의 끝없는 위협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고 적화통일, 혹은 그와 다름없는 노예적 종속적 평화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통일은 사실상 불가능 해 질지도 모른다. 통일은 어떤 형태의 통일이든 궁극적으로는「군사 통합」으로 매듭지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억제의 기본 개념은 전쟁을 도발하면 그로부터 얻는 ‘이익(Gain)’보다는 ‘손실(Loss)’가 더 크다는 것을 강조해서 도발을 못하게 한다는 논리다. 그러므로 억제가 성공하려면 우선 내가 그럴 수 있는 역량(Capability), 곧 물리적 보복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확실성(Credibility), 즉 나의 보복의지를 상대방이 ｢확신(確信)｣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나 9.11이후 미국의 집요한 테러와의 전쟁이 보여 주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식의 철저한 ‘응징과 보복’은 온 세계가 보편적으로 활용하고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대표적 억제 수단의 하나다. 수학적 공리(公理)와도 같은 일종의 군사학적 공리인 셈이다.

물론 모든 갈등과 분쟁의 해결에 있어 대화와 평화 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특히 정치적 리더십의 차원에서는 적극 추구해야 할 지고(至高)한 가치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인류 역사상 대화와 평화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비극적 실패로 매듭지어지거나 더 큰 전쟁의 재앙을 불러 온 일이 없지가 않았다. 또 자신의 대응 방향을 스스로 평화적 수단만으로 한정하는 것은 평화를 위해서라도 자칫 비 전략적인 접근법 일수도 있다. 더욱이 오늘 우리가 억제해야 할 위협은 동족인 북한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승리가 곧 민족구원의 숙원인 통일로 이어질 수 있는 우리 한반도의 현실적 특수성에 비추어, 체제유지의 한계상황으로 몰려가고 있는 김정일 집단의 도발적 남침을 억제할 만한 ‘손실’(Loss)이라는 것이 과연 있기나 할지 의문이다.




우리의 역량과 의지가 억제를 위한 필요 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것은 더욱 의문스럽다. 예컨대 북한이 도발하면 우리가 바로 김정일을 제거할 수 있다면 함부로 도발을 못할 것이지만 그러기에는 우리의 전력이 질‧양적으로 특히 성격적으로 문제가 좀 있다. 북한이 우리의 보복의지를 겁낼 가능성은 더욱 없다. 그 동안 북한은 우리가 전쟁을 선포해도 될만한 심각한 도발을 계속해 왔지만 우리는 그저 ｢엄포와 관용｣으로만 대응해 왔으니까 말이다. 그런 것들이 지금 북한의 그릇된 자신감을 고양시키고 버릇을 잘못 들여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가운데 최근 외신(外信)에 의하면 평양은 지금 전쟁 분위기라고 한다. 식량난에 고통받고 전쟁 준비에 시달리는 주민들은 오히려 전쟁을 기다리는 표정들이고 연일 전쟁연습과 준비에 분주하기 짝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울은 여전히 태평성대(太平聖代)라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사실 북한이 없는 살림에 휴전선상에 배치 된 저 턱도 없이 많은 화포와 전차(戰車) 전투기들이 모두 장식용일 리가 없고 태평양 건너 미국을 공격하겠다고 마련해 둔 것일 수도 없다.
설사 남북 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 도발 할 수 있음은 그 동안의 수많은 사례들이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일부의 바람대로 미국에게 북한과의 대화를 강요 할 수도 없다. 가능한 일도 아니지만 만약 미·북간에 불가침조약이 이루어지면「한·미 군사동맹」은 설자리가 없어진다. 나아가 미국과 김정일 간의 관계가 더욱 발전해서 미국과 한국 및 북한간의 관계가 정삼각형을 이루게 되면 북한의 국제적 입장은 크게 강화될 것이고, 미국도 남․북한을 동시에 통제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만족스럽겠지만 한국으로서는 자칫 월남화의 재판으로 가는 지름 길이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당장 우리도 북한처럼 전쟁 준비를 소리 높여 외치고 법석을 떨라는 말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 현명한 행동도 아니다. 한국동란이래 지금까지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공갈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이제는 나름의 자신감도 생길 만 하고 이번 같은 극한전술( brinkmanship)에는 때때로 ‘의도적 무시’야 말로 가장 효과적인 대응 방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비 태세가 배제된 턱없는 방심은 침략자를 유혹하는 도발에의 초대장에 다름 아닐 수가 있는 법이다. 전략적 기습(奇襲)이 가능하다면 더 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적이 공격해 오지 않을 것임을 믿지 말고 나의 방비가 굳음을 믿으라’는 손자의 말대로 조용한 가운데서도 방위태세만은 확고해야 한다. 진실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전투는 군인의 과업이지만 전쟁은 국민의 몫이다. 그래서 국가 방위 역량의 핵심은 국민의 확고한 방위의지이다. 온 국민이 일치된 마음과 결연한 태도로 어떠한 도발도 철저한 응징이 뒤따를 것임을 무겁게 각인 시켜야 할 일이다. 그것이 우리 한민족의 민족사적 불행을
예방함은 물론 북한에게도 패망의 그릇된 길로 오도(誤導)하지 않는 방법이다. <끝>

-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 -